‘집’이라는 그릇
‘아파트’란 주거유형은 보다 작은 필지에 고밀도로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에 전 세계 대도시에 적용될 수 있었고, 전후 도시화로 양적개발이 필요했던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주거유형이었기에 매우 빠른 속도로 정착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주거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기 때문에 분명 아파트를 통한 양적 개발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이제 대한민국의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문화로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고 하니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 주거유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나라를 뒤덮은 아파트에 대해 사람들은 왜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문제점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지인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주차장도 넓고,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갖추어진 그리고 날씨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아파트에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손때가 묻어나는 나만의 주택에 살고 싶습니까?’
대답은 ‘주택’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무언가 아파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다양한 주거문화가 보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다.
‘어떠한 점이 아파트의 문제점이라 생각하십니까?’
대답은 비싸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대다수였다. 다른 이유는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양한 주거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지만 정확히 왜 새로운 혹은 다양한 주거문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아파트라는 집은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 아파트는 오래되었다면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상품이다. 과거 한옥이 ‘인간이라는 소우주를 길러내는 또 다른 소우주’라 했던 선조들의 집에 대한 인식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러한 집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까?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이 ‘아파트란 결국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잘 만들어진 기계를 돌리기 위한 연료처럼 느껴질까?’ 하는 의문이다. 즉, 인간과 집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과거와 현재의 인식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야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분명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관계’에 대한 사유이다.
과거의 집은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중요한 집합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의 변화/시간의 변화에 순응하는 집, 땅이 가지고 있는 물질성, 공간성에 순응하는 집, 그러한 집에서 살아가는 유한성을 가진 인간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람들의 많은 스토리와 삶의 가치들…. 이것이 우리가 인식해야 할 ‘집’에 대한 생각들이 아닐까?!
물론 아파트 또한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의 ‘관계’에 대한 주체가 ‘기술’이라는 것이 과거의 집과 차이가 있다. 아파트는 기술이 집약된 대표적인 주거유형이다. 자연의 변화/시간의 변화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 땅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수치화 시키며, 그러한 집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획일화시키고, 결국에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에 대한 가치를 경제력으로 치환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가는 집에 대해 어떻게 사유해야 하나? 다음의 글을 생각해본다.
‘하이데거가 찾아낸 건축의 시원적 의미에 따르면,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축조하는 기술이 아니다. 건축은 본래 우주와 인간 삶에 근본적 터를 ‘열어주는’ 존재론적인 가늠함이었다. 이러한 가늠함은 사방세계(하늘, 땅, 인간, 신성함)를 감아 안는(넘나드는) 사이를 가늠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모든 관련 차원이 간직되고 균형을 이루도록 배려하며 디자인해야 하는 책임을 물려받고 있다. 건축디자인은 단순한 장식적 사건이 아니라 사물의 쓰임새와 요구를 조율해야 하며 하늘과 땅과 죽을 운명의 인간과 신성함이란 세계의 차원들이 모여 어우러지도록 해야 하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건축을 통해 비로소 실재의 근본적인 차원들인 사방세계가 서로 모여드는 터가 열려지고 물질적으로 구현되고 삶속에 실천되는 것이다.’
[이종관(2002), ‘대한민국 프로젝트, 건축을 통한 귀향’, 『건축』제46권 제8호 p.16]
‘Archi-Calli-Tonic 사옥’
앞서 살펴본 내용은 필자가 마음속으로 결심한 ‘건축’에 대한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건축의 본질적인 행위인 건축물의 구축과정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한다.
정확히 계획기간만 꼬박 4개월이 걸렸다. 주거와 디자인 사무소가 결합된 복합건축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통’이다. 원래 전통이란 단어가 정확히 정의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 속에 다양한 세대의 흔적 남기려 했으며, 우리나라의 전통적 요소를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전포2동 주민쉼터를 만든 10대, 관심을 가지고 공간에 대한 스터디에 도움을 줬던 20대의 대학생들, 건축물을 총괄 디자인한 30대, 축조과정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40대의 젊은 건축가분들, 이러한 복잡한 내용을 고려하여 아침, 저녁으로 머리를 맞댄 50대의 시공기술사님, 마지막으로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많은 신경써주시고 믿음을 주셨던 60대 건축사님. 이 건축물은 이렇게 다양한 세대의 흔적에 의해 완성되었고, 전통벽돌과 창호의 단조를 통해 전통건축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여기에 땅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부산의 산복도로’의 요소들이 공간적으로 연계되도록 계획되었다. 산복도로의 낮은 도로에서는 디자인 사무실로의 동선이, 후면의 높은 도로에서는 주거로의 동선이 연계되어 있으며, 건축물의 좌측 발코니에서는 문현동의 국제금융단지가, 우측 발코니에서는 서면의 전경이 시각적으로 연계되도록 계획하였다. 모든 시간대에 하늘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중정과 다양한 크기의 창호(최고높이 6m)도 계획하였다.
이렇게 계획된 건축물은 필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약 절반인 20년을 이곳에서 자랐고, 앞으로 보다 새롭고 다양한 사건(event)들을 담으려고 한다. 집이라는 그릇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투영할 수 있도록, 그러한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가꾸어가고 싶다.
글_유창욱 (주)라인종합건축사사무소 이사 / 동의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